생애 처음으로 만나는 외할머니
고민이 많아 보이는 엄마와 마냥 즐거워 보이는 아들, '상우'가 있다. 둘은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문제는 외할머니가 정말 어마어마한 시골에 살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상우는 계속되는 환승과 굽이진 산길에 점점 지쳐간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지만 상우는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릴 때 가출했던 엄마가 다시 어머니를 찾아 산골로 온 이유는 간단했다. 일을 구하기 힘들다며 본인의 자식을 몇 달간 봐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상우는 외할머니와 만나게 되는데 귀여운 손주를 처음 본 할머니의 손길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다. 모든 것은 엄마에게 배운 버릇이었다. 오랜만에 자고 가라는 할머니의 간곡한 요청에도 둘만 남긴 채 황급히 떠나버린다. 어린 아이이지만 철없는 상우는 할머니에게 못된 말을 골라서 한다. 그저 할머니는 묵묵하게 집으로 가자고 손짓한다. 이에 상우는 한껏 우쭐대지만 지금 본인이 따라가야 할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상우와 할머니의 조용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시골생활이 시작된다.
치킨을 표현한 기적의 커뮤니케이션
그날 저녁, 도착 후 내내 게임기만 붙잡고 있는 상우는 할머니가 바느질을 하던 주전부리를 주던 지긋이 쳐다보건 눈길 한번 주지를 않는다. 하지만 그날 밤, 혼자 화장실 갈 용기도 없는 상우에게 할머니가 조용히 비장의 무기를 건넨다. 바로 요강이었다. 그제야 눈길 한번 주는 상우를 보던 할머니는 막상 무서워 가지 말라는 손주 옆을 묵묵히 지켜준다. 그리곤 다음 날도 게임, 그다음 날도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상우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바로 배터리가 모두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들어주지 않는 할머니에게 상우는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귀중품을 뒤지거나 요강을 발로 차서 깨거나 방 안에서 롤러 블레이드를 타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몰래 할머니 고무신을 숨기기도 하고 벽에 낙서도 하며 잠자는 할머니 머리에서 은비녀를 들고 달아난다. 은비녀를 팔아 배터리를 사겠다는 못된 심보였다. 일단 호기롭게 나와 시내로 향하고 다른 할머니에게 길 안내도 받지만 어린아이에게 시골 초행길은 쉽지 않았다. 결국 울음이 터지고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집 근처에 다다른다. 마중 나와 있던 할머니를 발견한 상우는 잔뜩 겁을 먹는다. 그러나 할머니는 상우를 혼내지 않고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상우가 밥을 제대로 먹지 않자 상우가 걱정된 할머니가 그에게 먹고 싶은 걸 물어본다. 치킨을 표현한 손짓으로 기적의 커뮤니케이션이 성공한다. 그렇게 할머니는 상우를 위해 예전에 말려뒀던 나물을 챙겨 시내로 나간다. 상우는 치킨을 생각하며 신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휘파람도 불면서 할머니를 기다린다. 자신이 그려놓은 낙서도 지워놓으며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꿈나라에 빠지게 된다. 튀겨진 치킨 대신 할머니가 건넨 건 푹 고아진 백숙이었다. 백숙을 먹지 않겠다고 상을 거부하던 상우는 결국 배고픔에 깨어나 발골까지 하며 백숙을 먹어치운다.
상우를 성장시키는 말없는 할머니
다음날 상우와 할머니는 같이 시내에 나가게 된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을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어린 상우의 마음에도 많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다. 할머니는 이렇게 힘겹게 번 돈으로 손주에게 새 신을 사주고 맛있는 짜장면까지 사주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먹지를 않는다. 오늘 하루 종일 고생해 번 돈을 꼬깃꼬깃 주머니에서 꺼내 짜장면 값으로 계산한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길에서 발견한 배터리를 발견한 상우는 할머니에게 사달라고 조르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이어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버스에 탔다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할머니는 글을 전혀 읽지 못하기 때문에 버스에 탄 사람들을 보고 버스 노선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할 말이 있는지 상우를 불러보지만 또래의 여자아이만 바라본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상우에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는 거였고 다른 아이가 먹는 초코파이를 보며 사달라고 말한다. 할머니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먼저 버스를 타고 출발한 상우는 도착해서 걱정이 된다. 아무리 버스를 기다려도 할머니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본인이 받았던 초코파이 하나를 할머니 보따리 속에 넣어 둔다. 상우가 떠나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음에 그는 글을 모르는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준다.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위한 글을 가르쳐준다. 그렇게 이들은 각자의 현실로 돌아간다.
영화 에피소드와 현재
제작비가 거의 독립영화급이었으나 2002년 당시 무려 450만 명의 엄청난 관객수를 동원하며 투자사는 말 그대로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 영화에 투자금을 올인했다고 하는데 그 전설의 영화가 바로 흥행 참패의 TOP에 항상 오르내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할머니처럼 느껴졌던 상우 외할머니 역을 연기했던 '김을분'할머니는 그 당시 연기 경험이 전혀 없으셨던 분이었으며 심지어 즉석에서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로 최고령 대종상 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랐었고 실제로 말을 못 하신 건 아니라고 한다. 아무래도 연기 경험이 없다 보니 대사가 없는 역할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로 이름을 알린 이 어린아이, 상우 역에 '유승호'는 정말 이보다 더 잘 자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 멋지게 훌륭한 배우로 자라게 되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2021년 향년 95세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왔다고 한다. 2002년과 지금도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당시 영화는 세상과 많이 떨어져 계시는 어른들을 영화에 담아내었다고 생각한다. 세대의 소통을 표현하고자 한 노력이 영화를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임에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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