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선진국 미국에서는 배심원제의 규모도 크고 재판에 많은 영향을 줄 정도로 비중이 크다. 하지만 대한민국 배심원제는 2008년 처음 시작되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최근 나도 배심원으로 선정이 되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 배심원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배심제로 참여재판을 통해 어떻게 재판이 진행되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생소한 배심원이라는 소제와 탄탄한 스토리로 평점을 후하게 받았다. 특히 개봉 당시 가수 출신 박형식의 연기력이 관심사였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연기가 자연스럽고 개인적으로 순수한 느낌이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생각된다. 물론 연기 베테랑 문소리 배우와 윤경호, 조한철 등 배우들의 연기력도 영화를 빛낸 요소 중에 하나였다. 영화가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우리나라 배심원제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며 영화의 내용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때는 200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민참여 재판을 하게 되었다. 재판을 맡은 김준겸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의 격려까지 받으며 한껏 부담을 안았다. 김준겸 판사가 진행하는 재판은 존속살인을 저지른 대가로 피고인 강두식에 대한 양형 재판이었다. 하지만 배심원 재판을 하는 날, 한자리가 비는 사고가 나고 좌우에 배석하는 다른 판사들은 8명이 필요한 배심원제에서 그냥 7명으로 진행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김준겸 부장판사는 되도록 숫자를 맞추고 싶었는지 마지막 한자리를 놓고 심사를 강행한다. 그때 박형식, 8번 배심원 권남우가 등장한다. 배경은 엉터리지만 설정은 제대로 된 인물이다. 남우는 호신용품을 특허로 내서 창업을 해보려는 청년이다. 단순하고 순진한 인물로 제시된다. 그리고 결정 장애가 있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준겸은 결국 남우를 8번 배심원으로 결정하고 법을 전혀 모르는 각양각색의 일반인들, 잘 몰라서 용감한 무적의 배심원 군단이 법정에 들어가게 된다.
변호인에게 인사받는 일반 시민대표들
마침내 한국에서도 미국식 재판이 벌어지게 되는 순간이다. 미국의 법정 영화와 한국의 법정 영화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법정 영화에서 변호사와 검사는 항상 무슨 연극을 하듯 변호를 한다. 미국의 경우 판사와 배심원들을 설득하면서 이야기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판사에게만 내용을 전달하고 설득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배심원들은 판사보다 쉽게 설득될 수도 있다. 전문가이자 엘리트인 재판부의 판사 하나를 상대하는 것보다 배심원 여럿을 상대하는 것이 더 유리해질 수도 있다. 영화는 강두식에게 선임된 국선 변호인을 통해 당시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다. 국선 변호인은 늘 하던 대로 양형 재판에 나섰고 피고인에 선처해 줄 것을 부탁하며 판사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배심원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국선 변호인 입장에서는 인사를 할 곳이 한 군데 늘어난 것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국선 변호인이 인사를 두 군데에 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세밀한 디테일을 잘 잡아내고 있다. 국선 변호인이라 재판의 진행을 상당 부분 사법부에 의지하고 배심원들에게 제대로 어필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처음인데 강두식을 무죄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별로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강두식이 법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부정한다. 자신이 한 범행을 잘 모르겠으며 잘 기억나지 않다고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양형 재판에서 이제는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으로 이어진다. 배심원들은 난리가 났다. 그리고 다시 재판이 이어지고 배심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건의 쟁점이 되는 부분은 피고인 강두식이 어렸을 때 화상을 크게 입었고 두 손이 불편한 장애인이라는 점이다. 또 검찰에서는 법의학자의 소견 등을 통해 강두식이 망치로 어머니의 머리를 쳐서 죽인 후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떨어뜨린 다음, 자신의 범행을 은닉하기 위한 목적으로 119에 신고를 했으며 경찰을 피해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서 뇌진탕을 일으켰다는 점 등이다. 뇌진탕으로 인해 강두식은 그날의 기억이 사라졌고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강두식은 굉장히 공격적인 태도와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지니고 있다. 시체를 많이 본 경험을 지닌 6번 배심원이 사망한 강두식 어머니의 머리 사진을 보고 저건 장도리로 맞은 상처가 아니라고 외치면서 8번 배심원의 의심이 시작된다. 8번 배심원은 손이 불편한 강두식이 과연 장도리를 휘두를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후 8번 배심원은 계속해서 의심을 드러낸다. 다른 배심원들은 모두 유죄라고 말하지만 8번 배심원은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말을 한다. 잘 모르겠다며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8번 배심원을 정신 나간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처음 판사에게 들었던 이야기 '법이란 사람을 쉽게 처벌하지 않기 위해서 기준을 세운 것'이라는 설명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쉽게 처벌하면 안 되고 피고인은 무죄라고 생각하며 접근해야 한다는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8번 배심원은 유죄라는 확신이 없는 이상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8번 배심원이 의심을 시작하고 유죄 평결을 거부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미뤄두었던 여러 의구심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부분이다. 강두식의 딸이 한 증언도 마음에 걸리고 강두식이 어머니를 죽일만한 동기가 있었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결국 현장검증까지 시도하고 8번 배심원은 강두식이 기초생활 수급비를 받기 위해 썼다는 가족관계 해체 사유서의 필체가 강두식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해가며 계속해서 의심을 놓지 않는다. 마침내 8번 배심원의 끊임없는 의심은 다른 배심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결정한 유죄 평결을 번복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판사 역시 마지막에 자신의 판결문을 정정하며 강두식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다는 이야기이다.
또 한 명의 배심원이 되는 체험
영화는 배심원들의 추리가 항상 옳거나 맞아떨어지는 설정을 거부했다. 배심원들의 추측이 빗나가거나 설득력이 부족한 장면들을 넣어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끝까지 관객들로 하여금 배심원을 체험하듯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또 한 명의 배심원이 되어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다. 법에 대해 검사나 변호사, 판사에 비해 전문지식이 떨어지지만 사건을 일반적이고 평범한 시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또한 배심원들 사이의 의견 대립과 인물들이 가진 특징들이 사건을 다루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흥미진진하다. 오히려 배심원 중의 일부가 생각 없이 편견과 권력에 의존하고 있는 부분들은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그런 배심원들 중 의심 많은 8번 배심원을 중앙에 배치하여 사건과 배심원들의 평결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몰입도를 더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법원에서 추첨으로 정식 배심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디테일한 장치들이 실제와 얼마나 유사한지 비교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내용이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배심원들과 판사, 배심원들 사이의 갈등과 극복 장면들이 잘 표현되어 괜찮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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