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옆집에 살며 이웃하고 있는 발드빈 부부와 콘라드 부부, 그리고 발드빈 부부의 아들인 아틀리와 아그네스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중심에 한 나무가 있으며 그 아래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아틀리와 아그네스는 클럽에서 만나 실수로 아이를 가져 결혼하게 된 사이로 최근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러던 중 아틀리가 전 여자 친구와 찍은 비디오를 보며 욕구를 해결하는 모습을 아내인 아그네스가 보고 사이가 더 악화되었다. 아틀리는 그 일로 집에서 쫓겨나 부모님의 집에서 살게 된다. 그의 부모인 발드빈 부부는 실종된 큰 아들로 인해 상심한 체 살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특히 아내인 잉가가 정신상태가 다소 불안정한 상태이다. 그들의 옆 집에 살고 있는 콘라드는 모델 출신의 젊은 아내와 재혼하여 살고 있으며 재혼한 아내가 마흔 살이 되면서 어떻게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발드빈의 마당에 심어져 있는 커다란 나무의 그늘이 콘라드의 현관까지 그늘을 드리우며 양쪽 집안은 언쟁이 시작되고 이 일이 있고 난 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상대를 의심하다가 결국 아틀리는 잘린 나무에 깔려서 병원에 실려가고 발드빈과 콘라드는 서로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비록 우리가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는 거 같아도 우리 존재의 기본은 끊임없는 타인과의 관계, 즉 소셜 네트워크에 기반하며 우리는 그 네트워크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의 두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알지 못한 채 서로 반복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들은 서로에게 네트워크를 형성해 주고 있다. 인간이 근 시안적인 생각으로 이기적이 될 때 그 네트워크의 견고함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인간이 너무나 인간다워 겪는 비극은 자신의 존재의 본질조차 깨닫지 못하는 교만함에 있다. 나만 중요하고 나 자신만 귀하며 내 생각은 항상 옳다는 그런 태도처럼 말이다. 인간 사회에서 균형을 맞추는 상대의 존재는 나를 존재하게 하고 상대에게도 나의 존재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호 보완적 관계가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들과 맺고 있는 관계의 속성이다. 이 영화는 소통의 불완전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관객을 짜증과 공포로 몰아간다. 인물들의 행위가 비연속이라고 느끼는 이유도 다분히 개연성이 떨어지는 인과관계를 통해서 인물들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이런 부자연스러움과 과장된 연출은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답답함을 일으키며 결말에 대한 예측 가능한 암울함은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다.
소통의 부재가 만든 거대한 폭탄
영화의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아틀리, 아그네스 부부가 함께 있는 부분을 바라보면 어떠한 공감의 대사도 오고 가지 않는다. 둘은 한 장면 안에 존재하기만 할 뿐,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 그늘 때문에 시비가 붙는 장면을 보면 나무 그늘로 피해를 보는 이웃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각 부부는 그들만의 아픔이 있어서 바늘같은 작은 말도 커다란 창에 베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 공유되지 않은 각 부부들의 속사정일 뿐이다. 만일 아틀리와 아그네스가 혹은 발드빈과 콘라드 부부가 평소에 서로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아틀리의 딸은 엄마, 아빠와 한 집에 살며 완전한 부모의 사랑을 받았을 수도 있고 발드빈은 옆 집의 콘라드와 피투성이가 되어 서로를 사망에 이르게까지 하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소통의 부재, 불안정한 소통은 공존의 가능성을 없애거나 불안전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며 답답한 우리 역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과 큰 차이 없이 그저 자신이 소유한 것에만 의미를 둘 뿐 타인의 소유가 있어야만 나의 소유가 명확해진다는 개념에 아무 관심도 없을 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영화가 보여주듯 공멸일 것이다. 처음에는 최소한의 소통으로 쉽사리 진화 가능했던 갈등이었지만 철저한 소통 단절과 편향으로 인해 거대한 폭탄이 되어 인물들을 덮친다. 인간의 감정 따위는 어쩌면 그들 사이의 나무 한 그루보다 더 하찮은 삶을 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통해 오늘이라도 내가 속한 사회를 한번 돌아보며 사는 게 의미 있는 하루를 사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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