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어린 시절을 담은 영화 로마
바닥에 비친 하늘과 그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빨려 들어가는 물 위에 남은 거품, 밀려오는 물,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은 청소에 열중하고 있는 여성이다. 주인공 '클레오'가 청소를 끝내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장면까지 롱 테이크로 표현하는 이 영화는 알폰소 쿠아론의 걸작 '로마'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된 이 작품은 실직적인 2018년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경계에 서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만 진가를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65mm 필름으로 촬영을 진행한 데다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를 활용하고 있으니 영화관이 아니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로마는 화두를 던지는 영화이다. "영화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알폰소 감독의 유년시절에 대해서 한 인간의 삶과 시대의 흐름에 대해서 그리고 생명과 죽음, 여성에 대해서 묻고 있는 작품이다. 클레오의 삶을 통해 쿠아론은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살린다. 흑백으로 표현된 화면, 무수하게 쌓아 올린 소리, 정직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대비되는 화려한 소리의 향연 등이 영화를 말한다. 클레오는 늘 바쁜 일상을 보낸다. 아침부터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하나씩 깨우고 옷을 입히고 밥과 음료를 먹이고 빨래를 하고 정리한다. 저녁에는 함께 TV를 보면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면서 말수도 적고 인내심이 강하며 무엇보다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멕시코의 한 중산층 가정의 유모로 살아가는 클레오의 삶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표현한다.
클레오의 삶을 통해 들여다보는 1971년의 멕시코
클레오의 일상을 통해 1971년의 멕시코를 소환하고 있다. 클레오의 일상은 바쁘지만 클레오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네 명의 아이들은 늘 말썽이지만 안주인인 소피아가 클레오를 많이 아껴주고 있다. 가족들은 모두 클레오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아이들과는 옥상에서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하기도 한다. 놀이 도중 죽어서 말을 못 한다고 아이들과 맞춰주는 클레오는 하늘을 보며 한 마디 한다.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라고 말이다. 클레오에게는 같이 식모살이를 하는 친구 '아델라'가 있다. 그리고 클레오와 아델라는 둘이 대화를 나눌 때 스페인어가 아닌 미스텍어를 쓴다. 클레오와 아델라는 멕시코의 아메리칸 인디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소피아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가 출장을 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클레오는 오랜만에 아델라와 함께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 먹고 아델라의 남자 친구의 사촌과 영화과 데이트를 하기로 한다. 만난 남자의 이름은 '페르민', 어쩐지 이 친구는 영화보다는 다른 데에 관심이 있는 거 같다. 두 사람은 관계를 맺고 페르민은 자신이 푹 빠진 무술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의 가진 것 없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클레오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다. 일상은 그대로 이어지지만 클레오에게 변화가 다가온다. 클레오는 영화에는 관심 없고 키스에만 열중하는 페르민에게 자신이 월경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아무래도 임신을 한 것 같다고 알려준다. 그러자 페르민은 그대로 클레오의 곁을 떠나 도망친다. 클레오는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카메라는 임신한 클레오가 겪는 혼란과 두려움을 묘사한다.
해고를 걱정하는 클레오에게 다가오는 소피아
클레오에게 닥친 첫 번째의 걱정은 바로 해고였다. 소피아가 자신을 해고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며 소피아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클레오는 울면서 두려움을 드러내고 소피아는 클레오를 걱정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둘은 병원으로 향한다. 소피아는 어설픈 운전실력으로 사고도 내면서 어떻게든 클레오를 병원으로 데려간다. 병원의 산부인과에서 클레오는 임신 3개월이라는 걸 알게 되고 또 소피아의 눈물을 보게 된다. 소피아의 남편은 의사이다. 그리고 소피아는 남편의 동료를 만나 남편이 오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토로한다. 변화는 급격하게 찾아오고 있었다. 영화는 이후로 클레오의 인생을 계속해서 관찰한다. 클레오가 겪는 사건들과 임신, 페르민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국 영화는 클레오의 한 여성의 삶과 당시 멕시코의 시대적 상황을 이어가는 데에 성공하게 된다. 이 이상의 이야기는 영화를 직접 보고 경험하길 바란다.
영화 '로마'에는 그리 특별한 사건이나 장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일상적이고 평범한 현실의 이야기로 경탄을 주고 있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또한 고전 영화의 작업으로 만든 이 시대의 걸작이기도 하다.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매체에서 오히려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를 만들고 요즘처럼 3D, 4DX, VR, AR 같은 신기술들이 펼쳐지는 시대에 고전 흑백 영화의 작법을 선보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다. 71년 멕시코에서 있었던 거대한 사건과 한 개인의 사건,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연대의 이야기가 가슴을 적시는 작품이다. 보고 나면 오래도록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빠져들게 만드는 대단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담백하고 정직하고 수려한 영화이다. 느리고 정적이고 조용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화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마치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시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놀랍게도 시대의 촉감과 시대의 냄새가 풍기는 착각까지 주는 놀라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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